보길도, 청산도 마을지명유래

보길도

1. 백도리(白道里)
백도리는 속칭으로 부르던 이름은 백두였으며 우암 송시열선생이 1689년 제주대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에 선백두 글쓴바위에 남겨놓은 시귀에 의하면 백도(白島)로 기록되어 있다. 백도리 주변에 있는 바위들은 흰색으로 되어 있어 하얀섬같이 보인데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한다.
2. 중리(中里)
백도리와 통리 여항 사이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중리라고 불렀다. 통리, 여항, 백도, 중리의 4개 마을 중 가장 중심부락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3. 여항리(余項里)
옛 문헌에는 여고항리(余古項里)라고 기록하고 있다.
4. 통리(桶里)
해안선 모양이 물통처럼 생겼다고 하여 불리운 이름이며 만조시에는 통에 물을 가득 담아놓은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5. 월송리(月松里)
월송리는 조선시대 현종대(顯宗代; 1660~1674년)에 강릉 유씨(江陵 劉氏)가 처음 입주하였고 이어서 철종대에 김해 김씨와 경주 정씨, 전주 이씨 등이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의 이름은 옛날 風水(地官)가 자기 선조의 묘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달밝은 밤에 이 말을을 들려서������월하송림지풍(月下松林之風)에 산하초전지상(山下草田之相)이오 현심지상(賢心之相)이다������라는 시구로서 마을 형국을 읊었던 것이 연유가 되어 월하송림(月下松林)을 뜻하는 월(月)과 송(松)을 따서 월송리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6. 예송리(禮松里)
조선시대 현종대(顯宗代: 1660~1674)에 장흥 마씨(長興 馬氏)가 처음 입주하였고 이어서 해남 윤씨, 김해 김씨, 밀양 박씨등이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의 유래는 이 마을이 예의(禮義)를 숭상하고 인륜도덕을 함양한다는 뜻으로 예작(禮作)이라 하였던 것이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송과 예작을 합하여 예송리(禮松里)로 명명하였는데 해방이후 분구할 때도 부락민이 예의바르고 온화한 풍속을 시종 계승하고 있으며 마을주변의 소나무들도 말없이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예송리(禮松里)라 하였다 한다.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예송리 상록수림(常綠樹林)의 소재지이다.
7. 예작리(禮作里)
조선시대 순조대(純祖代; 1801~1834)에 김해 김씨가 제일 먼저 입주하고 그후 다른 성씨들이 입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조그마한 섬마을로 이 섬의 개척자인 김해 김씨 후손들이 예의범절이 밝아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다음 세대에게도 영원히 계승케 한다는 뜻에서 섬이름을 예작도(禮作島)라 하였고 일제시대 때에는 예송리와 통합되었다가 해방이후 분구하여 예작리라 하였다.
8. 청별리(淸別里)
청별리는 원래 부황리(芙黃里)의 일부분이었으나 어느 때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노화읍 이목리(蘆花邑 梨木里)가 마주 바라보는 근거리 지역으로 보길도(甫吉島)의 관문이고 면으로 승격하기 이전부터 면내 주요기관들이 위치한 마을이다. 1986년 4월1일 보길도가 보길면으로 승격한 이래 모든 기관은 여기에 있었으며 87년 11월16일자로 부용리(芙蓉里)에서 분구되었다.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 인조대(仁祖代; 1623~1649년)에 부용동에 은둔했던 고산 윤선도가 육지를 왕래할 때 이곳에서 배로 떠났다고 하여 청별(淸別)이란 이름이 붙여져 전해온다고 한다.
9. 부황리(芙黃里)
기록에 의하면 황원동(黃源洞)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으며 구전(口傳)으로는 환동이라고 불리어왔다. 1914년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부황리(芙黃里)로 개칭되어 불리우고 있다.
10. 부용리(芙蓉里)
부용리는 고산 윤선도가 여기에 정착하면서 부용동(芙蓉洞)이라 명명하였고 1914년 황원동(黃源洞)과 함하여 부황리(芙黃里)라 하다가 일제시대 말엽 다시 분구하여 부용리라 불렀다.
11. 정동리(亭東里)
조선시대 현종대(顯宗代; 1660~1674)에 창녕 조씨가 해남에서 처음으로 입주하였고 그후 임씨, 박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처음에는 정자리(亭子里)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주민수의 증가로 인하여 분구되면셔ㅓ 정자리의 동쪽에 있다 하여 정동리(亭東里)라고 하였다.
12. 정자리(亭子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 좋은 정자나무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 하여 정자리(亭子里)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정재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13. 우두리(牛頭里)
마을의 지형이 소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4. 선창리(仙昌里)
옛날 제주도를 드나들던 선박들의 선착장이라 해서 선창리(船倉里)라 하였다가 그후 일제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선창리(仙昌里)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15. 보옥리(甫玉里)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마을 이름을 예전에는 뽀래기 또는 뽀리기라고 불렀다고 하나 현재는 보옥리(甫玉里)라 하고 있다.

청산도